
SPECTACLE CRYSTAL
김종숙
KIM JONG-SOOK
2016. 5. 27 - 6. 15
SPECTACLE CRYSTAL
이미지 없는 회화
김종숙은 2004, 5년 이후 소위 크리스털 페인팅이라 불리는 작업을 통해 일종의 미학적, 회화적 모험을 감행해 왔다. 그녀는 회화의 전통적 매체를 버리고 크리스털이란 소재에 매료된 이후 줄곧 크리스털을 그리기의 매체로 삼아왔다. 다시 말해, 그녀에게 이 매체는 한낱 장식 요소가 아니라 물감의 대용물이다. 차라리 장식 요소라면 그녀의 회화를 모험이라 부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녀는 크리스털로 그린다. 마치 회화를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물감은 언제든 기꺼이 그 자신의 물질성을 희생해 이미지와 환영이 되기를 기다린다. 물감 색의 자연적 속성이 이미지의 속성과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크리스탈은 자신의 물질적 고유성을 시각적 이미지에 바치기를 꺼려하는 존재다. 그것은 이미지가 되기엔 그 자체로 존재의 본성을 가진다. 더구나, 크리스털은 기성품의 자질을 가지며, 자신의 실재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것은 회화에 녹아들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로서 회화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 더 이 크리스털이란 존재의 저항에 부딪힌다. 김종숙이 찾아낸 해법은 그저 그 사물의 본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크리스털은 하나의 이미지가 되는 일은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건이나 효과가 되기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비물질(빛)의 효과이다. 크리스털의 이런 본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제 그녀의 회화는 전통적인 의미의 정적인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각적 사건과 실재적 효과가 된다.
김종숙은 실크스크린을 통해 (흐릿하게) 전사된 한국의 전통 산수화 이미지 위에 작게는 수 만 개 많게는 수 십 만개의 보석을 붙여 그림을 그려 나간다. 그녀에게 그림의 완성은 단지 그림 안에 하나의 통일적 이미지가 형상화되는 순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그림은 하나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여건으로 하는 관객의 지각적 사건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림은 이미지화될 수 없는 그림이다. 그 누구도 그녀의 그림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볼 수 없다. 그래서 도록의 사진 이미지는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은 하나의 환영이다. 관객은 그녀의 그림 안에서 산수화 이미지가 아니라, 빛이라는 사건이 된 이미지를 경험한다. 그림은 관객의 미묘한 움직임에도 각각 다른 장소의 색과 빛을 보여주며, 그 빛은 이미 끊임없이 생멸하는 이미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 모든 이미지를 종합한다고 해서 그녀의 그림이 되는 것도 아니며, 그 모든 이미지를 그 배면에 깔린 산수화로 환원한다고 해도 헛된 일이다. 이미지는 본래 고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림은 일종의 이미지 없는 회화이다. 매 순간 새롭게 생성하는 지각적 사건 속에서 우리는 결국 정적인 산수 이미지가 사건으로서의 빛과 결합하는 지점에 이른다. 그 순간, 우리는 그 빛이 마치 죽은 산수화 이미지에서 나오는 것 같은 환영에 빠져든다. 그 환영 속에서만 우리는 물질로서의 보석, 객체적 이미지, 현상하는 빛의 이미지가 하나로 종합되는 사건으로 존재할 수 있다. 결국, 김종숙은 죽어 있는 물질과 옛 이미지가 지금 이곳, 이 순간, 나의 지각 속에 살아 있게 만들고 싶어 한다.
빛은 본래 경험의 사건이나, 우리는 그 빛 자체를 보지 못하며, 다만 그 빛이 실어 나르는 현상이나 이미지만 볼 뿐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는 지각의 사건을 추상적 이미지로 대체해 버린다. 결국 생생한 지각은 사건이 아니라, 이미지가 되어 버렸다. 김종숙의 회화는 불가능할 것 같은 모험을 통해, 이 전도된 관계를 원래대로 회복하려 한다. 김종숙의 크리스탈 페인팅은 미묘한 존재론적 경계에 서 있다. 물질이면서 비물질적 이미지이고, 이미지면서 실재이며, 실재이며 사건이며, 사건이면서 환영이다. 그녀의 회화를 어떻게 경험할지는 전적으로 지각자의 몫이다. 그녀의 회화가 이 존재론적 충돌을 극복하는 지점은 오로지 관객 각자의 지각 사건 안에서일 뿐이니 말이다. 그 지각적 생성becoming에 동참할 수 있다면, 그는 명멸하는 빛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조경진 철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