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harsis 展
손수민
SON SU-MIN
2022. 11. 16 - 12. 10
Opening Hours : Mon - Sat, AM 10:00 - PM 18:00
정화(淨化): 무언가를 잃어버린,
혹은 상실한 세상 모든 이에게 전하는 메시지
홍경한(미술평론가)
예술은 시각예술과 서사예술 두 가지로 나뉘며, 둘은 성격이 다르다. 전자는 합리적인 상태에서의 창작이지만 후자의 창작은 비합리적인 상태에 가깝다. 그러나 작품이 창작되는 데에는 미의 이데아에 대한 영감적 접근이 필요하며 예술 창작이란 합리적 분석과 감성적 몰입이라는 두 상태의 공존에서 비롯된다. 손수민의 작업 역시 작가 스스로 행한 합리적 분석과 감성적 몰입이라는 두 개의 레이어(layer)를 지닌다. 전광판 같은 조형 방식과 어떤 지각의 상황을 요구하는 텍스트(text) 및 인장(印章)이라는 입체의 반복적 드러냄을 통해 작가 스스로 예술에 관한 명료한 의식, 즉 공유와 공명으로 정의될 수 있는 건강하고 선한 의식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하니 매우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나, 기실 손수민의 작업은 장황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시 인식 가능한 그의 작품들은 예술의 ‘과잉 이론’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람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형적 특징이 있다. 이는 단지 단조로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되면서도 진지한 감정적 진정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더 트리니티 갤러리 전시에 소개되는 <Catharsis>(정화) 연작은 엄격한 수동 프로세스를 통해 완성된다. 부조화된 이미지에 깨알 같은 텍스트를 배경으로 하는 그것은 추상과 구상 사이의 대립을 뒤섞어 상호 의존성을 드러낸다. 특히 특정한 모양을 식각하는 패터닝(patterning)은 그의 스타일을 규정하는 시그니처(signature) 요소로 아쉬움이 없다.
이미지는 가독성 높은 원색과 부수적인 세부 사항이 제거된 대비(대립이 아닌)를 내보인다. 붉거나 푸른 입체 인장과 그 내부에 새겨진 ‘LOVE’, ‘HOPE’, ‘STAR’, ‘HEART’, ‘TIME’ 등의 단어는 명료한 의미전달을 위한 장치다. 익숙한 낱말을 통해 작화의 의도를 보다 명징하게 고지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흡사 인쇄처럼 매끈하게 각인된 텍스트와 그래픽 코드의 강조가 두드러짐 역시 위와 같은 조형방식의 결과다.
근작의 메시지는 ‘소통’에 있다. 인생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가르침 혹은 교훈적인 텍스트 또한 동일한 맥락에 놓인다. 마음의 진실하고 참됨이 너무나 쉽고 가볍게 희석되는 현실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하고 희망적인 글을 통해 용기를 북돋으며, 존재적 가치가 담긴 메시지로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산포(散布)하고자 하는 게 이번 작업의 목적이다. 발화자의 정서적 공감의 유대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작가는 작품을 접하는 이들에게 ‘작음 울림’이 되길 기대한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바쁘고 빠른 나날의 연속이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질 뿐더러, 편리해진 기계화로 교감과 소통을 대신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며 “읽었던 글들 중에 좋은 글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작업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했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글들은 헤르만 헤세의 명언을 비롯해 오드리 햅번, 수잔 케인, 피카소 등 다양하다. 이 글들을 선택했다는 것은 작가의 사상과 관련되며, 자아를 포함한 현실과 사회 등의 세상사에 관한 자신의 앎이 시각적 관심으로 확장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전시 주제인 정화(淨化),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혹은 상실한 세상 모든 이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중요한 밑동이다.
무엇보다 텍스트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할 만하다. 하나같이 인간 삶에 있어 요구되는 지침이나 깨달음, 본질과도 연결되는 것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할 때 흥미로운 사실은 손수민의 작품의 경우 그 출발로서 ‘나’의 내면과 본질의 종횡과 관계 맺는다는 점이다. 이는 존재를 외면에서 하나의 구조체로의 전개로 드러내며 부각되는데, 이 본질의 외화는 군더더기 없는 정화의 형태를 현현하고, 실제 우리가 눈으로 마주할 수 있는 <Catharsis> 시리즈로 귀결된다.
작가는 이를 물질적인 결과(대부분의 관람자들은 시각적 생산물에 집중함을 부정할 순 없지만)에 앞서 사고와 개념을 숙주삼아 텍스트-흔적으로 기록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그의 근작이 지향하는 소실점은 ‘존재’와 ‘흔적’으로부터 출발한 공유와 공명의 단계를 고지하는데 있으며 텍스트와 이미지는 그것을 위한 기표(記標)로 작동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기표들은 타자와의 소통권역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흔적’과 ‘존재’는 표상체계의 언어로 각각 옹립될 수 있다. 존재는 흔적의 유무를 외면할 이유가 될 순 있어도 시각예술에선 존재가 곧 흔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존재의 가치를 결정짓는 건 타자의 존재에 의하듯, 가시적 구조에서 드러난 존재의 흔적이 어떤 의미인지 또한 자발적 규정여부와 별개로 바깥의 공인이 요구된다. 이번 전시에서 획득 가능한 것도 실은 표현의 영역이 아니라, 각기 다른 개체들이 흡수된 의미의 공인에 있다.
